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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의택의 대담] 이을용도, 청주대도, 청춘FC도 모두 '미생'이었다②   15-08-11
대학연맹   4,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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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의택의 대담] 이을용도, 청주대도, 청춘FC도 모두 '미생'이었다②

기사입력 : 2015.07.30      기사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북마크  페이스북 공유  사이월드 공감




















[스포탈코리아=태백] 홍의택 기자= 대담(對談) : [대ː담] [명사] 마주 대하고 말함, 또는 그런 말. '속도'보다 '깊이'를 지향합니다. 숨 가삐 달려오느라 놓쳤던, 어디에 쉬이 털어놓을 수도 없었던, 그래서 세상 아래 묻혀 있었던 이야기들 풀어냅니다. 

"합격자 발표하고 나니 못 붙은 애들이 막 우는 거야. 뒤에 가서 담배 한 대 피우면서 '하, 진짜. 내가 얘네 두 번 죽이는구나'. 축구로 안 돼서 그만둔 애들 운동하자고 불러놓고 또 죽인 거야. 미치겠더라고. (안)정환이도 '이거 못해 먹겠다' 그러고. 옛날 생각 많이 났지. 나도 그랬었는데···. 너무 미안하고. 마음도 아프고. 그러면서 또 어쩔 수 없고." 

▲ 1편에 이어 계속(다시보기 클릭) 

안정환(39) 청춘FC 감독이 먼저 벨기에로 날아갔다. 스무 명 남짓한 선수단과 씨름 중이다. 그런 그가 매일 밤 전화해 투정한다. 대상은 이을용(39) 청주대 코치 겸 청춘FC 공동 감독. "을용아, 나 힘들어 죽겠다". 이 코치는 '제46회 전국추계대학축구연맹전'을 마친 뒤 합류하기로 했다. 그런데 웬걸. 최고 성적이 32강이었던 청주대가 8강까지 질주했다. 벨기에행도 재차 연기됐다.

"정환이도 해설하면서 이론 쪽이야 알고 있어도 현장 경험이 없잖아. 훈련 프로그램 같은 걸 짜야 하는데 그게 되나. 전체적인 훈련도 하고, 그룹별, 개인별로도 해야 하고. 자기가 안 해봐서 모르지(웃음). 운동장 나가서 애들 코칭을 어떻게 해줘야 하고, 잘못됐다 싶을 땐 어떻게 스톱해서 잡아줘야 하는지 정신 없을 거야."

"정환이도 언제가 지도자로 들어올 거거든. 처음에는 축구 일 안 한다 그러데. 방송도 나름 재밌 붙이고, 예능 쪽으로도 빠져서 그런가 보다 했지. 단둘이 소주 한잔 했더니 얘기가 달라져. '언젠가 내가 축구 쪽에 안 들어오겠니' 이러더라고. 무슨 자기가 천생 축구인인 것처럼 말이야. '아, 이놈 봐라' 했지. 어디 가서 막 표현은 안 해도, 돌아올 마음이 없진 않을 걸. 청춘FC는 지도자 안정환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고 봐."
 

안 감독의 지도자 변신보다, 이을용이란 인물의 방송행이 더 의아했다. '괴뢰군'이라 놀림 받아온 어수룩한 외모. 조용한 성격에 다소 거친 억양. '방송형 인물'은 아니다. 자신도 "연예계, 방송계 체절은 절대 아니지". 방송계 오퍼가 없었던 건 아니란다. 이 코치가 쑥스러워하며 그간 받은 제안을 털어놨다. 진지하게 반문했다. "안 감독님이야 곱상하시다지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잘렸다. "걔가 어떻게 곱상한 외모야. 살이 얼마나 쪘는데". 

"최재형 PD도 내가 바로 OK할 줄 몰랐다더라고. 안 할 줄 알았다던데. 왜 그렇게 봤지(웃음). 연출도 아니었어. 족구 하고 있는데, 갑자기 정환이가 찾아오는 거야. 들어보니 좋은 취지다 싶어서 알았다고 했지. 다른 방송 일이었으면 안 했을 텐데, 다시 공 차게 해준다는 게 얼마나 좋아. 나도 월드컵 통해 사랑받았고, 그걸 돌려줘야 한다는 마음도 컸고." 

그날 셋은 두부 김치에 소주를 들이부었다. 좋은 데(?)는 젊었을 때나 드나들었다며. 이제는 편한 소줏집부터 찾는다며. 서른 즈음에 대한민국을 들었다 놓은 왕년의 스타는 마흔 아저씨가 다 돼 의기투합했다. 애들 살려보자고. 축구 선배 노릇 해보자고. '이 바닥 못 벗어날 팔자'라며 지도자 생활에 뛰어든 이을용에겐 또 다른 도전이었다. 



강릉상고(현 강릉제일고)를 떠나 대학으로 향하던 때, 축구를 관뒀다. 보통 중도 포기자가 속출하는 시기다. 고3 마지막 대회를 마친 뒤 대학팀 동계 훈련에 들어가기까지. 모처럼 얻은 휴식기가 생각에 생각을 부른다. 부족한 동기. 불투명한 미래. 고민을 거듭하다가도 생전 처음 누리는 자유에 고삐가 풀려버린다. 긴장도, 축구도 놓게 된다.  

"울산대에 막 들어갔을 때 집이 힘들었지. 운동에 대한 흥미도 잃었고. 잘 데 없어 이 친구 집 일주일, 저 친구 집 일주일 전전했는데. 이놈들이 공 안 찰 바에는 어디 가서 돈이라도 벌어오라는 거야. 막노동도 해보고. 옷 만드는 공장도 가보고. 술집 가서 웨이트도 돼 보고. 두루두루 해봤는데, 너무 힘들어. 남의 돈 먹는다는 게 진짜···(웃음). 그래도 축구가 제일 쉬운 거더라고. 나한테 딱 맞다는 걸 그때 알았지" 

이게 아니구나 싶었다. 마침 1994 미국 월드컵 바람도 불었다. 부러움에 입맛 다시던 이을용. 그 사정을 알아낸 이현창 당시 철도청 감독이 수배에 들어갔다. "괜찮게 될 놈이었는데···. 걔 어디 있는지 수소문해서 데리고 와. 내가 어떻게든 운동 다시 시킬 테니까". 부모님에게까지 연락이 닿자, 확답을 줘야 했다. 부랴부랴 짐 싸 고등학교 팀으로 들어갔다. 9개월간 잠자던 몸을 깨우기 시작했다.

"철도청 들어가서 뛰다가 바로 다음 해에 군대에 갔어. 내 동기들 대학 졸업할 때, 난 이미 제대를 했지. 98년도에 정환이는 부산대우로얄즈, 나는 부천SK. 참 오래됐네, 오래됐어(웃음). 프로 들어가서 진짜 죽을 각오로 열심히 했었는데. 새벽 훈련 1년 내내 한 번도 안 쉬고 꼬박꼬박 나갔으니까. 그때 집이 힘들고 해서 마지막이란 생각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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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할 무렵 고민이 많았지. 철도청에 돌아가야 하나. 드래프트라도 넣어봐야 하나. 그런데 이현창 선생님도, 같이 복무하던 프로 출신 형들도 다 도전해 보라는 거야. 그때 있던 형들이 강철(현 포항스틸러스 수석코치), 최문식(현 대전시티즌 감독), 김기남(현 서남대 감독). 최용수(현 FC서울 감독) 등등. 상무 있을 때 프로 스카우트들이 나도 체크했나 보더라고. 운 좋게 도전할 기회가 왔고, (곽)경근이 형이 1순위, 내가 2순위로 부천에 들어갔어."
 

1998년 부천에서 K리그 데뷔. 그해 33경기 출장에 3득점. 1999년 3월 브라질과의 친선전에서 A매치 첫 출전. 2002 한일 월드컵 폴란드전 황선홍의 왼발 발리 골, 미국전 안정환의 헤더 골 통해 2도움. 터키전 직접 프리킥 득점. 2004 아시안컵 거쳐 2006 독일 월드컵까지. 이건 '기적'이었다. 



'안쓰럽다'. '불쌍하다'. 청춘FC 지원자를 접한 이 코치의 첫 소감이다. 대학 진학 뒤 감독 때문에 그만둔 선수들, 집안이 어려워 그만둔 친구들, 부상 탓에 그만둔 아이들. 아르바이트만 찾아다녔던 이, 횟집 서빙을 보던 이, 캐나다에서 비행기타고 온 이 등등. 굴곡진 인생 숱하게 목격해왔음에도, 한참 어린 후배들 처지 듣고 보니 또 딱했던 모양이다.  

"골키퍼에 이도한이라고 있는데. 얜 자기가 집 생계를 이끌어가더라고. 이런 애들 진짜 운동하면서 먹고 살게는 해줘야겠다 싶은 거야. 환경이 그렇다 보니 간절함은 다들 있어. 하긴 그거 아니면 지금 얘네들 훈련도 못 시켜. 이미 망가져서 되돌리려면 훨씬 더 힘들 텐데. 그렇다고 봐줄 수도 없고. 마음 약하게 굴면 결국 저들이 못 살아남으니까. 그렇게 해도 겨우 될까 말까인데."

"나도 운동 중간에 그만둬서 그 마음들 잘 알아. 어떤 생각하는지 딱 보면 안다고. 그럴수록 더 강하게 가야 해. 독하게 만들어야지. 이렇게 좋은 기회가 왔는데, 간단히 방송 출연하고 세상도 잘 풀릴 줄 알았으면 큰 오산이야. 방송 나간다고 조금이라도 으스대면 바로 혼쭐내야지. 내가 그런 거 감쌀 스타일도 아니고."


개천에서 용 난다? 개천에서 용 쓰다 끝나는 시대 아닌가. 그도 끄덕였다. 그래서 더 몰아세웠는지도 모른다. 조민국 감독과 함께 맡은 청주대부터 강하게 조련했다. 어르기도 어르지만, 눈물 쏙 빠지게 채찍질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할 줄 아는 게 이것(축구 지도)밖에 더 있냐"며 너스레를 떨면서도 "한 놈이라도 더 운동할 수 있다면 매달려야 하는 거 아니냐"는 것이다.



프로팀 지도자 때와는 다른 고민도 생겼다. 제자들의 '취업'. 청주대도, 청춘FC도. 이제는 남의 인생까지 짊어졌다. 선수 시절보다 집에 더 못 들어간다. 수입도 토막 났다. 집사람에게 말했단다. "인생살이가 계속 잘될 수 있나. 돈 벌 때도 있고, 못 벌 때도 있는 거야. 벌어주는 만큼에서 또 알아 써야지". 경상도보다 더하다는 '강원도 남자'. 무심하게 툭툭 던져도 속내는 안 그럴 터다. 한 가정의 가장, 한 대학 팀의 코치, 한 프로젝트의 감독. 이을용은 벅찬 시기를 보내고 있다.

"지도자로서 힘들고 스트레스도 쌓이지. 그게 힘들어 하기 싫다가도 '내가 어떻게 운동을 했는데'라며 예전 생활 떠올리지. 먼 산 보면서 '이 XX. 배가 부르니 나태해지는구나', '이러면 안 된다' 이런 생각도 하고(웃음). 운동 다시 시작한 그때만 떠올리면 그래도 불만이 많이 줄고, 반성하게 되지."

이을용, 청주대, 청주FC. 엄정히 말해 그 처지는 조금씩 다르다. 처했던 환경, 시작하는 출발점, 속해있는 시대 등. 하지만 이을용은 각각의 개체를 '축구판 미생'으로 묶었다. 20년 전 '운동 다시 하고 싶다'며 후회했던 인물. 피땀으로 증명하며 완생으로 거듭난 인물. 그랬던 이을용이 그 자취를 탐내며 도전하는 미생에게 손 내민다.

"미리 이런 생각 하면 안 되는데···. 애들 추려가다 보면 또 한 번 마음이 아플 거라고. 그게 현실이니까. 청춘FC가 없었다면 얘들 그냥 어디 조기회 나가서 공 찼을 텐데. 어쩌면 그게 더 행복인데. 그래도 도전 기회가 생겼으니 또 한 번 잘해봐야 하지 않겠어. 우리 청주대 애들도 잘 키워 내보내야 하고. 그게 보람이지, 다른 거 뭐 있나." 

사진=홍의택 기자, KBS <청춘FC 헝그리 일레븐>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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