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대학축구연맹 프레스센터 4기 = 태백, 글 정지혜 /사진 윤현경, 정지혜] 한남대학교(이하 한남대)의 승부차기가 끝난 후 모든 선수들이 구유하를 향해 달려갔다. 누군가는 소리를 질렀고, 누군가는 구유하를 힘껏 끌어안았다.
한남대는 초당대학교(이하 초당대)와의 8강전에서 1-1로 정규 시간에서 승부를 가리지 못한 뒤 승부차기에 돌입했다. 구유하는 두 차례 상대의 슈팅을 막아냈고, 한남대는 승부차기에서 4-3으로 승리하며 4강에 진출했다.
이날 경기의 MVP는 골키퍼 장갑을 낀 미드필더 구유하였다.
“골키퍼로 뛰는 게 맞는 걸까”
구유하가 골문에 서게 된 것은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한남대의 골키퍼 2명이 부상으로 출전할 수 없게 되면서 누군가는 그 자리를 대신해야 했다. 박규선 감독으로부터 골키퍼 출전을 제안받은 구유하는 “미드필더로 더 많은 기회를 받고 싶었다”라며 솔직하게 말했다. 이어 “골키퍼로 뛰는 게 맞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라는 고민도 털어놓았다.
선수에게 자신의 포지션은 단순히 경기장에서 서는 위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랜 시간 준비해온 역할이자,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자리다. 구유하도 미드필더로서 경기에 나서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팀이 자신을 필요로 하는 순간, 그는 개인적인 아쉬움을 뒤로 미뤘다.
“이렇게라도 팀에 필요한 선수라면 당연히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구유하가 골키퍼 장갑을 낀 이유는 자신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위기에 놓인 팀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한 명이 골문에 섰지만, 모두가 함께 지켰다
골키퍼 경험이 전혀 없는 구유하에게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공을 안정적으로 처리하는 방법부터 몸을 던지는 다이빙까지, 짧은 시간 안에 모든 것을 익혀야 했다. 상대가 전문 골키퍼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적극적으로 슈팅을 시도할 것이라 예상했기에 구유하는 “공을 잡는 훈련과 다이빙 등 여러 동작을 집중적으로 준비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술보다 구유하에게 더 큰 힘이 된 것은 동료들의 믿음이었다. 한남대 선수들은 구유하에게 “공이 하나도 날아오지 않게 해주겠다”고 말하며 갑작스럽게 골문을 맡게 된 동료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안심시켰다. 그리고 실제 경기에서도 구유하를 위해 한 발 더 뛰었다.
구유하는 예선 숭실대학교(이하 숭실대)전에서 무실점을 기록하며 MVP로 선정됐다. 골키퍼로 출전한 첫 대회에서 만들어낸 클린시트였다. “무실점이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동료들이 저를 위해 더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힘이 됐고, 자신감도 얻었습니다.” 구유하 한 명이 골문을 지킨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한남대 선수단 전체가 골키퍼가 된 경기였다.
“내가 하나만 막으면, 동료들이 다 넣어줄 것”
숭실대전에서 얻은 자신감을 초당대와의 8강전에서 더욱 강한 믿음으로 바뀌었다. 승부차기를 앞둔 골키퍼에게 모든 시선이 향했다. 더구나 골문 앞에 선 선수는 전문 골키퍼가 아닌 미드필더였다. 하지만 구유하는 자신이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하나만 막아주면 동료들이 다 넣어줄 거라고 생각하고 섰습니다.” 승부차기 직전 차원호 코치는 구유하에게 “이미 일어난 상황이니 즐기라”라고 말하며 “유하가 막아줄 것 같아 걱정되지 않는다”라고 덧붙여 강한 믿음을 전했다. 불안해하지 말라는 위로가 아니었다. 구유하라면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이었다.
구유하는 첫 번째 선방은 킥이 시작되기 전 방향을 정하고 몸을 던져 막았다며 운이 좋았다고 돌아봤지만, 첫 선방 이후 그의 마음에는 여유가 생겼다. “이제 동료들이 다 넣어줄 테니 천천히, 더 즐기면서 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 선방에서는 "상대 키커가 내 움직임을 보고 차려는 것을 느꼈다"며 "서두르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렸다"고 말했다. 그리고 상대의 슈팅 방향을 확인한 뒤 몸을 던져 다시 한번 공을 막아냈다. 골키퍼 경험이 없는 선수라고는 믿기 어려운 판단이었다.

모두의 목소리가 들렸던 순간
그에게 선방 후 누가 먼저 보였냐는 질문에 “팀 동료 모두가 보였다”며 “모두의 목소리가 제 귀에 들렸고 정말 짜릿했다”며 환한 미소를 보였다. 한남대의 마지막 키커가 골을 넣고 종료 휘슬이 울리며 한남대의 4강 진출이 확정됐다. 선수들은 일제히 구유하를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그를 둘러싸고 끌어안으며 승리의 기쁨을 나눴다.
동료들이 달려와 자신을 앉았을 때 구유하는 자신이 영웅이 됐다는 생각보다 다른 감정을 먼저 느꼈다. “내가 동료들에게 행복한 순간을 하나 만들어줬구나 생각했다.” 그 말은 두 차례 선방보다도 구유하라는 선수를 더 분명하게 보여준다. 자신이 영웅이 됐다는 기쁨보다 동료들에게 행복을 선물했다는 사실을 먼저 생각했다.
이번 대회에서 구유하는 숭실대전에 이어 두 번째 MVP를 받았다. 두 번 모두 자신의 본래 포지션인 미드필더가 아닌 골키퍼로 받은 상이었다. 그는 “아쉬운 건 맞다”며 아쉬운 마음을 드러내면서도 “하지만 지금은 팀이 먼저다”라며 “팀의 축구를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주변에서는 골키퍼로 포지션을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는 농담이 나올 법한 활약이다. 하지만 구유하는 “저는 필드 플레이어입니다”라고 당당히 말하며 “앞으로 더 공부하고 준비해서 증명하고 싶다”고 밝혔다. 골키퍼로서의 활약이 미드필더 구유하의 꿈을 바꾼 것은 아니다. 다만 자신을 증명할 순간을 잠시 미뤄두고, 지금 팀이 가장 필요로 하는 역할을 받아들였을 뿐이다.
골키퍼가 없는 팀의 도전
한남대는 이번 대회에서 골키퍼의 부상이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만났다. 골키퍼가 없다는 것은 토너먼트에서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한남대는 그 약점을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채웠다. 동료들은 구유하에게 공이 가지 않도록 더 많이 뛰었으며 코칭 스태프는 구유하가 막아낼 것이라고 확신했다. 구유하는 그 믿음에 두 차례의 선방으로 답했다.
그렇게 한남대는 위기를 숨기지 않고 모두가 함께 감당했다. 초당대전 승리는 구유하 한 명이 만든 결과만은 아니다. 그러나 가장 낯선 위치에서 가장 큰 부담을 견딘 선수가 누구였는지를 묻는다면, 답은 분명하다.
한남대 41번 구유하다.
“행복한 순간을 하나 더 만들러 가겠다”
한남대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안한 상황 속 4강 진출에 만족하기보다 처음부터 바라왔던 우승을 향해 계속 나아가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골키퍼상에 대한 욕심을 묻는 질문에도 “우승을 한다면 골키퍼상은 따라오는 결과이기 때문에 우승부터 하고 싶다”며 개인상보다 우승을 먼저 이야기 했다.
구유하는 초당대전에서 이미 동료들에게 행복한 순간 하나를 선물하고 이제 그는 또 다시 골문 앞에 선다. 자신이 골키퍼가 아니었다는 사실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자리라는 사실도 중요하지 않다. 그의 뒤에는 자신을 믿는 동료들이 있고, 그의 앞에는 함께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
“우승을 향해 갈 겁니다.” 구유하는 잠시 말을 고른 뒤 이렇게 덧붙였다. “행복한 순간을 하나 더 만들러 가겠습니다.” 처음 골문에 섰을 때 구유하는 자신이 골키퍼로 뛰는 것이 맞는지 고민했다. 이제는 누구도 그가 한남대의 골문을 지키는 이유를 묻지 않는다. 그가 막아낸 것은 승부차기에서 상대의 두 번의 슈팅만이 아니었다. 한남대가 멈출 수도 있었던 순간을 막아냈고, 동료들의 여름이 끝나는 것도 막아냈다.
그리고 한 번도 골키퍼였던 적 없는 미드필더는 지금, 한남대의 가장 믿음직한 마지막 선수가 되어 있다.